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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 시오노 나나미> 발췌

개츠리 2020. 12. 26. 13:04

  드디어 로마인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존재에 대해서 정확히 언제쯤 알게 됐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충 중학생이던 시절, 학교 도서관에 꽂혀있는 이 책을 본 기억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 영어 선생님을 통해서 이 책의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때 선생님께서 시오노 나나마의 남자들에게란 책을 추천해주셨다. 작가의 기준으로 봤을 때 어떤 남자가 멋있는가에 대해 기술을 한 책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기억에 남는 내용은 별로 없다. 이후에 초중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를 대학 때 봤는데, 이 친구가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을 되게 감명 깊게 읽었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쯤부터 언젠가 이 책을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워낙 방대한 양의 책이기 때문에 함부로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기가 어려웠다.

  2020년 10월, 드디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총 15권에 달하는 로마인 이야기 중, 그 첫번째인 1권에서 기억할만한 내용들을 발췌해보고자 한다.

 

 

제 1장. 로마의 탄생

 

p 41. 덧붙여 말하면, 현대 이탈리아의 대통령 관저는 퀴리날레 언덕에 있다. 선거 업무를 담당하는 내무부는 비미날레 언덕 위에 있다. 그래서 텔레비전에서도 대통령 관저에서 중계한다고 말하는 대신 퀴리날레에서 중계한다고 말하고, 선거 속보를 알릴 때에도 내무부라고 말하지 않고 비미날레에서 중계한다고 말한다.

 

p 52. 그리스오 로마로 대표되는 다신교와 유대교 및 기독교를 전형으로 하는 일신교의 차이는 다음 한 가지뿐이라고 생각한다. 다신교에서는 인간의 행위나 윤리도덕을 바로잡는 역할을 신에게 요구하지 않는 반면, 일신교에서는 그것이 바로 신의 전매특허다. 그리스 신화에서 볼 수 있듯이, 다신교의 신들을 인간과 똑같은 결점을 지니고 있다. 윤리 도덕을 바로잡는 역할을 맡지 않기 때문에, 결점을 지니고 있어도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일신교의 신은 완전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버려두면 감당할 수 없게 되는 인간을 바로잡는 것이 신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pp 67-68. 서력 기원이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바뀔 무렵에 살았던 그리스의 역사가 디오니시오스는 고대 로마사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로마를 강대하게 한 요인은 종교에 관한 사고방식이었다."

로마인에게 종교는 지도원리가 아니라 버팀대에 불과했기 때문에 종교를 믿음으로써 인간성까지 속박당하는 일도 없었다. 강력한 지도 원리를 갖는 것에는 이점도 있지만, 자기와 종교가 다른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제 2장. 로마 공화정

 

p 221-222. 'SPQR"는 '세나투스 포풀루스 쿠에 로마누스', 즉 '원로원 및 로마 시민'을 뜻하는 네 낱말의 머리글자를 모은 기호다. 현대 로마에는 원로원이 없지만, 로마시 의회는 자신을 옛날 로마 원로원의 후예로 생각하고 싶은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지 1천 50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 네 글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SPQR'라고적혀 있으면 곧 로마를 의미했던 고대에, 도시 국가 로마의 핵인 로마 시민과 동격으로 표시된 유일한 기관인 원로원의 중요성은 오늘날의 로마시 의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였다.

  세나투스는 고대 로마가 사라진 뒤에도 베네치아 공화국의 '세나토'로 계승되었고,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오늘날에도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양원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의 상원은 라틴어 세나투스에서 파생된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현대의 '세나투스'를 우리말로는 원로원이 안리ㅏ 상원이라고 번역한다. 적절한 번역이다. 양원제의 의회 민주주의 체제하에서의 '상원'과 공화정 로마나 벶네치아 공화국 같은 과두정치 체계하에서의 '원로원'은 같은 라틴어를 어원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국의 귀족원과도 다르고, 일본의 참이원과도 전혀 다르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공화적 로마의 세나투스를 원로원으로 번역하기가 좀 망설여진다. 원로원이라면 오랫동안 공적을 쌓아 명성을 얻은 노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젊은이들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트집이나 잡는 곳이라는 인상마저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대 로마의 원로원은 양원제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택한 나라의 상원이 아니라 단원제 국가의 하나뿐인 의회이며, 현역에서 은퇴한 장로들의 집회가 아니라 팔팔한 현역들이 모인 기관이었다. 어쨌든 30세부터 원로원에 의석을 가질 수 있었다.

 

 

맺음말

 

pp 293-294. 로마가 융성한 요인에 대해, 세 명의 그리스인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는 종교에 관한 로마인의 사고방식이 그 요인아라고 말했다. 인간을 계율로 다스리기보다 인간을 수호하는 형태의 종교인 로마 종교에는 광신적인 경향이 전혀 없고, 그래서 다른 민족과도 대립관계보다는 내포관계로 나아가기가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종교를 인정한다는 것은 다른 민족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이리라.

 정치 지도자이기도 했던 폴리비오스는 로마의 독특한 정치체제의 확립이 로마가 융성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각각 공동체 일부의 이익만을 대표하는 경향이 있는 왕정과 귀족정과 민주정이라는 정치체제를 고집하지 않고, 집정관 제도를 통해 왕정의 장점을 살리고, 원로원 제도를 통해 귀족정의 장점을 살리고, 민회를 통해 민주정의 장점을 살린 로마 공화정의 독자적인 정치체제에 융성의 요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확림함으로써, 로마는 국내의 대립관계를 해소하고 거국일치 체제를 구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플루타르코스는 패자까지 포용하여 동화시키는 로마인의 생활방식이야말로 로마가 융성한 요인이라고 단언했다. 플루타르코스의 모국인 그리스에서는 그리스인이 아닌 민족을 바르바로이(야만인)라고 불렀을 뿐만 아니라, 같은 그리스인 사이에서도 스파트랕 출신이 아테네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반면에 로마에서는 어떠했는가. 같은 라틴족에 대해서는 출신지를 따지지 않고 시민권을 부여했으며, 적국 출신인 경우는 일정 기간 로마에 거주하기만 하면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다만, 로마인은 이기지 않고 관용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이기고 나서 관요을 베푸는 식이었다.

  이들 세사람의 지적은 모두 옳은 것처럼 여겨진다. 로마가 융성한 요인을 찾는다면, 이 세 가지를 전부 들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디오니시오스가 거론한 종교, 폴리비오스가 지적한 정치체제, 플루타르코스가 말한 포용력은 모두 고대에는 이례적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로마인의 개방적인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p 294. 지성에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족(갈리아인)이나 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인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이 이들 민족보다 뛰어난 점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가지고 있던 개방적인 성향이 아닐까. 로마인의 진정한 자기정체성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이 개방성이 아닐까.